2004년 04월 10일
봄
아이들이
봄소풍을 간다
잘난 권세도 학문도 닿지 않는 곳으로
민들레 풀씨처럼
움직이는 세계의 느낌처럼
철 지난 역사를 뒤켠으로 밀어내면서
- 이윤택, <봄소풍(부제: 움직이는 세계의 느낌)> 전문
겨우내 굳어 있던 온몸이 노곤하게 풀리고, 점심 먹은 것이 거진 저 아래로 내려갈 때쯤이면 어김없이 봄잠이 몰려온다. 아가씨들은 잿빛 스웨터 대신 하얗고 푸른 물방울 무늬가 커다랗게 박힌 원피스를 입기 시작하고 큰 건물 입구 한편의 녹슨 스프링클러는 투덜투덜 소리를 내며 작은 무지개를 만들어 낸다.
봄이다.
이윤택 시인은 아이들이 봄소풍을 가는 저 달콤한 봄날의 정경에서 '철 지난 역사를 뒤켠으로 밀어내'는 가슴 뻐근한 의식의 나아감[進步]을 노래했다. 그의 말대로 '민들레 풀씨처럼' 지금 이 순간도 세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그 변화라는 게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현란한 속도에 그만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휴대전화로 사진 찍고 음악 듣는 것은 예삿일이요, 촛불 든 데모 군중(?)이 광화문에 수십만 명 모였대도 이제는 뉴스거리에 끼지도 못하는 세상이다. 어쨌든 이렇게 기술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뒷걸음[退步]치지 않고 어린애들처럼 소풍 가방을 메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신께 감사한다. 나 역시 봄을 맞아, 더 나은 삶을 위해 또 꿈틀거려 봐야겠다는 낯익은 다짐을 하게 된다.
바야흐로 봄이다.
하지만 이제 밖에 나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반추해 보건대, 지난 겨울은 또 얼마나 길었고 얼마나 다사다난했던가. 똥 묻은 개들이 단체로 겨 묻은 개를 두들겨 패서 끌어 내렸고 한 비정한 아비가 제 자식들을 꽁꽁 언 한강물에 던져 죽게 한 겨울이었다. 애꿎은 어린 아이들이 알고 보면 불쌍한 어느 아저씨에게 야산으로 끌려 가서 돌아오지 않기도 했고, 학부모와 교장, 학생과 스승들이 서로 때리고 싸우고 욕하다 그 중 몇 명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던 아픈 겨울이었다. 저 먼 나라 은행에 나라 빚은 다 갚았지만 아직 우리 경제는 몇 년째 시베리아 기단 한가운데서 벗어날 줄 모른 채 겨울에 머물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겨우내 새 직장에 적응한다고 힘들었고, 뭐 봄이 되었다고 내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신통하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산통 깨긴 싫지만 이를테면 ‘봄이지만 어쩌면 진정한 봄은 아닐는지 모르는 일[春來不似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드디어, 봄이다.
아침 신문에서 어느 이문에 밝은 학자가 "우리 경제 이제 살아날 거예요."라고 말한 것을 받아 적어 놓은 기사를 언뜻 봤다. 자세히 읽긴 좀 두렵다. 그냥 그렇게 믿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봄이니까. 우리 사회의 '의식적 나아감'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선거일도, 가방에다 맛있는 것 잔뜩 넣어 꽃이 핀 호숫가로 놀러 갈 수도 있는 봄이니까. 시인이 읊었던 '세상이 움직이는 느낌'이란 게 저 손끝 말초신경에서부터 찌릿하게 전해오는, 그 봄이 드디어 왔으니까.
봄소풍을 간다
잘난 권세도 학문도 닿지 않는 곳으로
민들레 풀씨처럼
움직이는 세계의 느낌처럼
철 지난 역사를 뒤켠으로 밀어내면서
- 이윤택, <봄소풍(부제: 움직이는 세계의 느낌)> 전문
겨우내 굳어 있던 온몸이 노곤하게 풀리고, 점심 먹은 것이 거진 저 아래로 내려갈 때쯤이면 어김없이 봄잠이 몰려온다. 아가씨들은 잿빛 스웨터 대신 하얗고 푸른 물방울 무늬가 커다랗게 박힌 원피스를 입기 시작하고 큰 건물 입구 한편의 녹슨 스프링클러는 투덜투덜 소리를 내며 작은 무지개를 만들어 낸다.
봄이다.
이윤택 시인은 아이들이 봄소풍을 가는 저 달콤한 봄날의 정경에서 '철 지난 역사를 뒤켠으로 밀어내'는 가슴 뻐근한 의식의 나아감[進步]을 노래했다. 그의 말대로 '민들레 풀씨처럼' 지금 이 순간도 세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그 변화라는 게 점점 가속도가 붙어서, 현란한 속도에 그만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휴대전화로 사진 찍고 음악 듣는 것은 예삿일이요, 촛불 든 데모 군중(?)이 광화문에 수십만 명 모였대도 이제는 뉴스거리에 끼지도 못하는 세상이다. 어쨌든 이렇게 기술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뒷걸음[退步]치지 않고 어린애들처럼 소풍 가방을 메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신께 감사한다. 나 역시 봄을 맞아, 더 나은 삶을 위해 또 꿈틀거려 봐야겠다는 낯익은 다짐을 하게 된다.
바야흐로 봄이다.
하지만 이제 밖에 나와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반추해 보건대, 지난 겨울은 또 얼마나 길었고 얼마나 다사다난했던가. 똥 묻은 개들이 단체로 겨 묻은 개를 두들겨 패서 끌어 내렸고 한 비정한 아비가 제 자식들을 꽁꽁 언 한강물에 던져 죽게 한 겨울이었다. 애꿎은 어린 아이들이 알고 보면 불쌍한 어느 아저씨에게 야산으로 끌려 가서 돌아오지 않기도 했고, 학부모와 교장, 학생과 스승들이 서로 때리고 싸우고 욕하다 그 중 몇 명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던 아픈 겨울이었다. 저 먼 나라 은행에 나라 빚은 다 갚았지만 아직 우리 경제는 몇 년째 시베리아 기단 한가운데서 벗어날 줄 모른 채 겨울에 머물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겨우내 새 직장에 적응한다고 힘들었고, 뭐 봄이 되었다고 내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신통하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산통 깨긴 싫지만 이를테면 ‘봄이지만 어쩌면 진정한 봄은 아닐는지 모르는 일[春來不似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드디어, 봄이다.
아침 신문에서 어느 이문에 밝은 학자가 "우리 경제 이제 살아날 거예요."라고 말한 것을 받아 적어 놓은 기사를 언뜻 봤다. 자세히 읽긴 좀 두렵다. 그냥 그렇게 믿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봄이니까. 우리 사회의 '의식적 나아감'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선거일도, 가방에다 맛있는 것 잔뜩 넣어 꽃이 핀 호숫가로 놀러 갈 수도 있는 봄이니까. 시인이 읊었던 '세상이 움직이는 느낌'이란 게 저 손끝 말초신경에서부터 찌릿하게 전해오는, 그 봄이 드디어 왔으니까.
# by | 2004/04/10 17:40 | 어설프기 짝이 없는 크리틱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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