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밥 건조한 일상

어느 여름날 점심 무렵, 혼자 밥을 먹어야지 하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세상은 눈부심을 잃어버린다. 초점없는 눈, 멍해져 가는 머리를 하고 건물을 나선다. 혼자 먹는 밥은 이제 일상의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나는 오늘도 갈곳을 몰라 그냥 다리가 가자는 대로 몸을 맡긴다. 1964년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해 왔다며 '원조'라고 우기는 어느 음식점에 들어간다. 몇분이세요, 역시 초점없는 눈을 한 아줌마가 묻는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가 아니라 몇분이세요 라고 묻는다. 혼잔데요, 하고 대답하자 아줌마는 시선을 애써 피한다. 그리고는 한분은 안받습니다, 하고 차갑게 말하며 하던 걸레질을 계속한다. 뙤약볕 아래 또 길을 나선다. 다리가 가자는 대로 간다. 어느 중국집에 들어선다. 카운터에 앉은 아줌마가 몇분이세요, 하고 묻는다. 몇분이세요, 라고 또 묻는다. 나는 움찔하며 혼잔데요, 하고 대답한다. 다행히 아줌마가 저쪽에 가서 앉으라고 말한다. 4인분의 수저와 물이 차려진 테이블. 아저씨가 와서 나머지 3인분의 수저와 물을 한쪽으로 밀어 놓는다. 대강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사람들은 음식과 커뮤니케이션을 함께 먹는다. 저쪽에서 웃음보가 터진다. 혼자 온 사람이 없나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제일 구석에 양복 입은 아저씨가 등을 보인 채 혼자 앉아 있다. 이 넓은 식당에서 혼자란 오직 그 아저씨와 나뿐이다. 반가워서 저쪽까지 가서 말을 걸어 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저씨에게 말을 걸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서빙하는 아가씨가 밑반찬을 가져온다. 김치는 생기없는 표정으로 얌전히 누워 있다. 단무지와 양파는 빛을 반사하지 않는다. 다들 풀이 죽어 있다. 생각해 보니 혼자 먹는 밥의 밑반찬은 다들 저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풀죽은 김치와 물기없는 단무지. 녀석들에게서 나를 보았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활기차게 들어온다. 저쪽 끝에 혼자 앉아 있던 아저씨가 고개를 돌려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든다. 저렇게 하얗고 눈부신 미소를 지닌 아저씨는 처음이네, 라고 생각했다. 아저씨의 하얀 미소가 산산히 부서진 여름날의 중국집에서 나는 그렇게 혼자 볶음밥을 먹었다. 그리고는 짬뽕 국물을 마시며 '아까 아저씨에게 말을 걸지 않기를 정말 잘했어'하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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