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결정 즉각 철회하라

2004년 2월 13일. ‘드디어’ 이라크 전투병 추가 파병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번 결정으로 노무현 정부는 더 이상 참여∙희망∙개혁 등의 말들로는 수식될 수 없는, 단순하고 무능한 ‘온건 보수 정권’에 다름 아니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처음에는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 라며 <참여정부>의 자주성을 주장하는 듯 하더니, 비전투병 추가 파병이라는 견강부회로 여론을 호도하고 결국에는 전투병 3,000명 파병이라는 ‘뻔한 결론’을 이끌어 냈다.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착잡하기 이를 데 없고, 표가 아깝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나라당 출신 후보와 정책 결정 면에서 하등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차라리 이회창이 당선되었으면 현재의 반전 세력에 이른바 온건 보수와 중도파까지 합세하여 보다 힘있는 여론몰이라도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어려운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개탄스럽다.


대선에 쫓긴 부시를 도와 줄 ‘영웅’, 한국

부시 행정부가 이렇게 우리를 비롯한 몇몇 ‘만만한’ 국가들의 옷소매를 붙잡고 늘어지는 데는 올해 치러질 미 대선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부시는 혈안이 되어 이라크 전역을 뒤졌지만 결국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은 철권 통치로부터 이라크 민중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닌, 부시의 ‘기름 전쟁’이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명분 없는 전쟁에 젊은이들을 내몬 부시는 대선 때까지 이라크 전쟁에 대한 기억을 사람들에게서 어느 정도 지워내야 했다. 하지만 이라크는 갈수록 ‘베트남화’되어 갔고, 다급해진 부시는 급기야 뒤처리를 ‘부탁’할 상대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힘이 실린 부탁’ 때문에 한국은 자기 돈 내고 ‘전범 국가’에다 ‘미군을 대신한 총알받이’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과연 파병이 실리인가?

그렇다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이라크 추가 파병은 과연 그들의 말대로 ‘국익’에 부합되는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한미동맹(동맹이 아니라 종속 관계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지만)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헌법까지 위배해 가며, 인구 6억의 아랍권 국가들과의 관계를 망쳐 가며, 수백억을 들여 멀쩡한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몰아 가면서까지 우선되어야 할 것은 아니다. 북한 핵 위기니 6자회담이니 하는 전혀 다른 사안을 이라크 파병의 당위성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솔직히 실소를 금할 길 없다. 이라크 파병 요구를 거절하는 데서 오는 미묘한 외교적 마찰을 평가절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북한 문제는 현재 이라크 전쟁과 어떠한 직접적인 인과 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 제발 소신을 지키고, 멀리 내다보자는 거다. 고작 미국 눈치 좀 보자고, 몇 푼 안 되는(수구 언론들이 ‘막대한 이익’ 등의 수식어로 과대 포장하고 있는) 전리품 좀 얻자고 전범 국가의 대열에 합류한다면, 한국 역시 언젠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길 없을 것이다.


명분도 실리도 없는 전투병 추가 파병은 철회되어야

8년간 ‘블루 사이공’을 공연해 온 극단 ‘모시는 사람들’ 대표 김정숙 씨는 최근 “공연을 전격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파병국민임이 낯뜨거워서, 더 이상 반전 메시지를 담은 공연을 계속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홍세화의 말대로, 침략군은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점령군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해방군이 될 수는 없다. 어떤 민중도 남의 역사에 함부로 끼어 들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끼어 듦’이 순수한 의도가 아닌, 불순한 야욕으로 천착된 것이라면 더욱 더 그러하다. 우리는 지금 베트남전의 우를 다시 범하려 하고 있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박상병’, ‘블루 바그다드’, ‘이라크 참전 전우회’ 같은 역사의 찌꺼기들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또한 자기 자식은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 하면서 다른 젊은이들을 사지로 내몰라고 외쳐 대는 수구 보수 세력들의 공허한 ‘국익론’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인류애적 양심을 버리고 알량한 실리만을 추구한 이번 이라크 전투병 추가 파병 결정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